‘식(食)’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일부 선진국은 ‘식’을 통해 후진국을 통제한다. 우리나라는 1967년부터 1976년까지 식생활개선국민운동을 진행했다. 쌀 소비를 줄이고, 밀 소비를 촉진시켰다. 학교에선 교사들이 학생들의 도시락까지 검사했다. 1960년대부터는 미국에서 개량된 밀가루를 수입했다. 여기다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장려운동까지 더해져 밀가루는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부터 한국인들의 식습관도 차츰 바뀌어갔다.
한국은 세계에서 라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인당 면류 소비량은 연간 13.3kg에 육박하며, 유탕면류(라면)은 전체 69%인 9.2kg을 차지한다. 라면의 주재료는 밀이다. 국민들의 연간 밀 소비량은 1970년 26.1kg에서 2013년 32.3kg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쌀 소비량은 136.4kg에서 67.2kg으로 절반가까이 줄었다. 육류소비량도 늘었다. 1995년 27.4kg에서 2014년 45.8kg으로 연평균 2.7% 증가했으며,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연평균 각각 2.6%, 2.2% 늘었고, 닭고기는 4.1% 증가했다.
반면 자급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쌀 자급률은 1970년 93%에서 2013년 89.2%로 하락했고, 밀은 15.9%에서 1.1%로 급락했다.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밀 자급률은 0.5%로 떨어진다. 옥수수는 18.9%에서 1.0%로, 두류는 86.1%에서 9.7%로, 보리쌀은 106.3%에서 19.9%로 추락했다. 육류 자급률 역시 100%에서 72.8%로 하락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7대 곡물(쌀, 보리, 밀, 콩, 옥수수, 감자, 고구마) 수입액은 2014년 1만7358억 달러에서 2025년 1만824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쌀을 포함한 곡물류 재배면적은 전년보다 1.4% 감소한 96.1만 ha로 예상된다. 시장개방 확대에 따른 수입증가와 교역수지 악화에 따른 소득증가로 인해 자급률은 하락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체결된 FTA영향이 누적되면서 농산물 자급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하림 곡물메이저를 꿈꾸다 하림그룹의 상위 지주회사인 제일홀딩스는 비상장회사로 하위 지주회사인 하림홀딩스와 팬오션, 선진, 팜스코, 제일사료 등 16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하림홀딩스는 NS홈쇼핑 등 25개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자산규모 9조2000억원의 대기업이다.
지난 2월 11일 팬오션은 국내 사료업체에서 공동 구매한 남미산 옥수수 7만1500t을 직접 구매·운송해 인천항 대한벌크터미널(TBT)엘리베이터에서 하역했다. 팬오션은 남미산 옥수수 총 31만5000t을 도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으며, 나머지 물량은 오는 5~6월께 다섯 차례에 걸쳐 국내에 도착할 예정이다. 팬오션은 지난해 7월 법정관리를 벗어난 하림그룹에 편입된 직후 곡물사업실을 신설하고, 미국 농무성(USDA)으로부터 곡물 수출 허가를 취득하는 등 곡물유통사업에 진출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곡물 사업은 짧게는 30년, 길게는 100년을 보고 하는 사업이다”며 “오늘 글로벌 메이저 곡물 회사로 가는 첫 발을 딛게 돼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가 한 해 도입하는 곡물이 1500만여 톤인데, 이 가운데 70~80%를 하림이 담당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김 회장은 언론을 통해 ‘카길(Cargill)’과 같은 글로벌 곡물 메이저가 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카길은 세계 1위 곡물 메이저 기업으로 미국 최대 비상장 회사다. 2014년 매출액은 1204억 달러(한화 약 148조7800억원)에 육박한다.
김홍국 회장은 지난 2014년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곡물 가격의 구조를 보면 심할 때는 곡물 원가와 운송비가 같을 정도로 운송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배 운임이 곧 곡물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운송비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며 “10여년간 사료 원료인 곡물을 수입하면서 이런 구조를 터득했다. 그래서 우리가 배를 갖고 운송을 직접 맡으면 운임 변동에 휘둘리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다음은 곡물시장에 정통한 관계자가 하림의 곡물유통사업 진출 배경을 설명한 말이다.
“하림은 국내 상당수의 사료회사를 인수했다. 총괄적인 인테그레이션(통합)을 마련하는 게 하림의 장기계획이다. 그게 차츰차츰 진행돼 팬오션도 인수했다. 곡물메이저들은 직접적인 선박회사를 갖는 경우도 있지만, 전 세계에 있는 선박회사들과 카르텔이 있다. 지금 옥수수 가격이 190불 정도인데, 톤당 운임이 20불 정도다. 운임은 국제경기에 따라 변동을 많이 탄다. 이 정도 운임이면 거의 바닥이다. 2004~2005년쯤 운임이 40%까지 올라간 경우가 있다. 중국발 세계 물동량 대란이 발생했고, 원유 가격도 영향을 줬다. 곡물은 운임이 상당히 중요하다. 운임은 곡물메이저가 결정한다. 운임을 제외한 나머지 가격은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 선물가격이다. 미국의 비영리 선물거래소에서 거래가 된다. 거기에는 곡물메이저를 포함해 농민들도 참여하고 일반투자자, 은행, 증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곡물메이저는 여기서 자신들이 현물 매입한 가격을 조절하기 위해 선물을 산다. 이게 곧 전 세계 곡물가격의 표준이 된다. 이 가격은 시장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곡물메이저에겐 메리트가 없다. 결국 운임을 조절한다. 하림은 팬오션을 인수해 선박을 운용할 수 있게 됐다. 안정적인 수급을 노리려는 것 같다. 그러나 STX도 이런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틈새시장 정도면 몰라도, 곡물메이저들이 하림에게 이 시장을 내줄지 모르겠다.” 덧붙여 그는 김 회장이 단순히 한국시장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역을 공략해 곡물유통사업에 뛰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홍국 회장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곡물 도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곡물 유통시장 진출은 산업계의 염원이자 국가적 과제라고 표현한다. 그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곡류 유통 시장에 깊숙하게 침투해야 유사시 곡물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김 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곡물 수입 의존도는 각각 76%, 77%로 비슷하나, 일본은 자국 회사를 통한 곡물 공급 비중이 96%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거의 100%를 해외 업체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지난 2007~2008년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계 30여 개국에서 식량폭동이 발생했고 아이티, 이집트 등 여러 나라에서 정권이 무너졌다. 여기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식량생산이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신흥공업국들이 경제성장으로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동물성식품 소비가 크게 증가해 사료곡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올해는 슈퍼엘리뇨에 따른 기상이변과 라니냐 등에 따라 농산물 수급불안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사료업계 관계자는 “올해 라니냐 현상이 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며 “라니냐가 오면 엘리뇨보다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밥상을 지배하는 자 전 세계 곡물시장은 주요 곡물메이저인 이른바 ‘ABCD’로 불리는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번기(Bunge)·카길(Cargill)·루이드레퓌스(LDC) 등 4대 메이저사가 독점적 시장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업체들은 전체 곡물 유통량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세계 곡물의 생산, 유통, 저장 등 가치사슬(Value Chain) 단계별 기반 산업에 대해 안정적인 사업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수직적, 수평적 인수합병을 통해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을 확대해 시장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국내로 도입되는 밀 중 4대 곡물메이저의 수입 비중은 46.8%다. 이 중 카길이 전체의 28.9%, ADM이 15.4%를 차지한다. 4대 곡물메이저의 수입 비중은 2003년 34.6%에서 2008년 58.5%로 연평균 7.0%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밖의 곡물업체 중에서는 호주의 밀 국영무역회사인 AWB(Australian Wheat Broard)가 전체의 30.3%로 비중이 가장 크다. 일본계와 캐나다계(CWB)의 비중은 각각 15.3%, 0.8% 정도다.
국제곡물 시장구조는 곡물을 생산하는 국가마다 곡물을 생산하는 일차적인 목적이 수출이 아닌 소비에 있다. 특히 곡물시장은 생산량 대비 교역량 비중이 작은 엷은 시장으로 일부 생산국의 수출에 시장이 좌우되는 구조다. 소맥은 전 세계 생산대비 19~22%, 옥수수는 11~12%만 교역된다.
국내 곡물수급은 해외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소수의 해외 곡물메이저를 통한 구매로 높은 비용지불이 불가피하며 협의를 통한 대행수입 등 수입모델도 단순화해 안정적인 곡물조달에 어려움이 있다. 이처럼 국내 곡물시장은 수급의 불안정 요소가 항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곡물 가격변동에 매우 민감하며, 국제 곡물가격 폭등 시 국내 소비자가격에 완충없이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기업들이 해외생산기반 개척을 위해 진출해있긴 하지만, 인프라 구축이 아직 미흡하며, 선물시장 거래를 통한 리스크 헤징(Hedging) 경험 부족으로 안정적인 곡물 조달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4대 곡물메이저 중 특히 카길, 번기는 밀과 옥수수, 콩의 주요 생산국가인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안정적인 곡물 조달을 위한 가치사슬 단계별 안정적인 사업체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곡물 수입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곡물메이저, 왜 물류에 관심을 뒀나 곡물의 공급과정은 다른 원자재의 유통방식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생산된 곡물은 수매에서 적절한 시점에 인도되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친다. 관건은 벌크 상태에서 품질 및 위생을 유지하면서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각 구성 요소의 조합과 효율적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통합적 운용 역량이 필수적이다.
박동일 전 STX상무가 작성한 ‘세계 곡물 유통, 물류 산업 동향 및 발전방향’에 따르면 20세기 후반까지 곡물 메이저들의 시장 지배력은 물류거점과 수출터미널을 연결하는 수송권 확보와 터미널의 독점적 지위에서 나왔다. 유통망을 장악하는 것이 곧 시장을 지배하는 원천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2000년대 초부터 남미 지역 곡물 공급량 증가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수입 물동량 증가로 인해 해상 운임의 급등락에 따른 변동폭이 확대됐다. 이에 곡물메이저들은 자가 수송선단 보유를 시도했고, 이들 중 카길과 번기 등은 수백 척 단위의 파나막스급 수송 선단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만큼 대량 수송 역량을 크게 확장했다. 결과적으로 해상 운송 부문에서의 이윤이 기업 전체이윤을 높였고, 해상 곡물수출에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베이시스 개념 FOB(Free on Board 본선인도조건)에서 C&F(Cost and Freight 운임포함 인도조건), 즉 육해상 종합 유통이라는 확대된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현재는 4대 곡물메이저가 모두 대규모 곡물 전문 선단을 운영하는 세계 최고수준의 선사를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파나마 운하 확장은 곡물시장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곡물수송의 기준이 되고 있는 파나막스급과 캄사르막스급 혹은 포스트 파나막스급 등이 요구하는 최저 수심보다는 더 깊어진 약 15m의 수심을 제공할 것이다. 이에 따라 약 1만~1만5000톤 정도 수송량이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커피로 눈을 돌려라 한편 곡물의 한 종류인 커피산업의 성장세도 눈여겨봐야한다. 사이토 다가시 교수는 저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에서는 세계화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으로 커피와 홍차를 꼽았다.
커피는 세계 5대 교역 농산물로 국제 물동량이 크고, 고부가가치품목으로 분류된다. 커피는 뉴욕상품거래서와 런던상품거래소 등에서 선물 상품으로 거래된다. 2013년 세계 커피시장 규모는 약 2000조원이며, 이 중 세계 최대 커피 소비시장인 미국시장 규모가 520조원으로 25%를 차지한다. 반면 중국시장은 약 12조원으로 0.6%에 그친다. 중국은 차에서 커피문화로 전환되고 있으며, 그 시장 규모는 성숙단계 도달 시 최대 7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주요 커피생두 원산지, 가공지, 소비지가 분리되어 있고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 기회가 존재한다. 커피생두 생산비는 1kg당 1달러 정도이나, 단순 생두 보관시 1.5배, 로스팅시 2.4배, 인스턴트 커피제조시 26배, 커피전문점 350배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특히 중국의 커피시장이 성장될 경우, 우리나라는 입지적 장점과 가공기술력 등의 결합으로 아시아 커피 물류가공 허브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2012년 기준, 세계 커피소비량은 85억톤으로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지속 증가하고 있다. 커피 최대 생산국은 브라질과 베트남으로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커피가공업이 발전된 나라는 커피를 수입해 가공한 뒤 수입규모 2배 이상의 커피를 수출한다.
커피물류는 국제 중계무역상과 대형 제조사 등이 주도한다. 중소 제조업체는 생두를 생산지에서 직수입하기도 하나 대부분 수입업체를 통해 조달하여 로스팅 등 가공 후 판매·수출하는 구조다. 커피 중계회사로는 스위스의 이컴(Ecom)과 독일의 노이만(Neumann) 등이 대표적이다. 커피 제조사는 크래프트(Kraft)와 네슬레(Nestle)가 양분하고 있으며, 사라 리(Sara Lee) 등이 뒤를 쫓고 있다.
루후커피컴퍼니 김필립 대표는 글로벌 커피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커피는 농장에서 생산돼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는 부가가치물류(Value Added Supply Chain Logistics)가 개입된다. 김 대표는 단순 물류가 아닌 특별한 가치(Value)를 추가해야, 커피산업에서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김필립 대표는 “커피는 5~15도 사이의 정온창고에서 보관되지만, 비용은 냉동창고 수준의 높은 비용을 받고, 물류센터 보관면적이 적어도 저장할 수 있는 양이 많다”며 “커피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한국이 커피산업의 거점으로 세계 커피시장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커피SCM전략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인천공항의 지정학적, 비용적 경쟁력, 항만 연계성 등을 활용한 공항만 연계형 커피 쇼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국내외 주요 커피업체들의 커피생두·원두·가공제품을 전시·보관하고 전세계 바이어 유치 및 판매를 통한 동북아 커피거래 거점을 형성하는 게 목적이다.
우리나라는 공항·항만형 자유무역지역은 물류기업 중심으로 운영돼 제조·서비스업 연계 부가가치 창출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김필립 대표가 강조하는 글로벌 커피가공허브는 주요국과의 FTA체결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참고자료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량안보 및 해외농업 물류체계 구축>·<농업전망 2016>, 세계농업 제153호 <세계 곡물 유통, 물류산업 동향 및 발전방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해외 곡물 확보를 위한 한국의 대응방안>, 도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선진국의 조건 식량자급>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